'잉여생산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3.03 새로운 개인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2. 2013.06.12 PPT 깎던 학우
  3. 2013.03.13 쉽게 쓰여진 시 (2)
  4. 2013.02.06 수강신청 망하고 부르는 노래 (2)

여기서는 오랜만에 쓰는 글이네요.

워드프레스 사용법을 익혀서, 개인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사이트라기보다는 여러 모로 블로그에 가까운 모습이지만요.

주소는 http://imiwakannai.net/ 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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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 깎던 학우

2013.06.12 17:50 from 잉여생산물

벌써 서너 학기 전이다. 내가 갓 복학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숙사에 살 때다. 전공수업 왔다 가는 길에, 팀플을 마무리하기 위해 카페에서 일단 조모임을 해야 했다.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PPT를 깎아 주겠다는 학우가 있었다. PPT를 한 파일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간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PPT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급하거든 니가 가 만드우."

대단히 무뚝뚝한 학우였다. 시일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준비해야 할 스크립트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발표할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학우님, 외고집이시구먼. 스크립트 쓸 시간이 없다니까요."

학우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만드우. 난 안 주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스크립트 쓸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PPT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구글 드라이브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타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PPT를 틀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PPT다.

스크립트 짤 시간을 놓치고 급히 말을 만들어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팀플을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조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시간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학우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학우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본관 지붕 비둘기똥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검은 다크서클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학우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전공 수업에 가서 PPT를 내놨더니 교수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앞에 발표한 조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교수의 설명을 들어 보니, 글자가 너무 많으면 주목을 하다가 딴짓을 잘 하고 같은 슬라이드라도 보기 힘이 들며, 글자가 너무 적으면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고 오도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학우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기(竹器)는 혹 대쪽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곧 뜨거운 인두로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죽기는 대쪽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죽기에 대를 붙일 때, 질 좋은 부레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소라 붙인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인다.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소라 붙일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약재(藥材)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숙지황(熟地黃)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구증구포(九蒸九 )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구증구포란 아홉 번 쪄내고 말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쪘는지 열 번을 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 찔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PPT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학우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팀플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학우가 나 같은 학점 쪼렙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발표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학우를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에 공강시간이 되는 대로 그 학우를 찾았다. 그러나 그 학우가 있었던 카톡방에 학우는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학우가 있었던 카톡방에 멍하니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저쪽 본관의 지붕 비둘기똥을 바라보았다.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일 듯한 지붕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학우가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PPT를 깎다가 유연히 지붕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학우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다른 수업에 들어갔더니 후배가 노트북 자판을 뜯고 있었다. 전에 PDF, 프레지를 쿵쿵 두들겨서 쓰던 생각이 난다. PPT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키보드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이니 위군추야도의성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서너 학기 전 PPT 깎던 학우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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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

2013.03.13 17:13 from 잉여생산물

쉽게 쓰여진 시(원작: 윤동주)


창 밖에 밤안개 가득해

반지하방은 나의 아지트

 

학생이란 가난한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포스트를 적어 볼까,

 

땀내와 눈물 짠 맛 아프게 품긴

가상계좌로 보내진 학비 삼백사십만원 받아

 

전공서적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흩어져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수강신청 성공하는 것일까?

 

알바는 구하기 어렵다는데

포스트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반지하방은 나의 아지트

창 밖에 밤안개가 가득한데,

 

알바천국 들어가 알바자리 조금 찾아보고,

시대처럼 올 장학금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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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듣고 있는가?(Do you hear the student sing?)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학생의 노래

다시는 수강신청 망할 수 없다 외치는 소리

마우스클릭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페이지 열려 수강신청이 되리라


모두 함께 망하자

누가 나와 함께 하나?

저 너머 휴학계 내고

한 학기 쉴 세상

자, 우리와 싸우자

싸인이 기다린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학생의 노래

다시는 수강신청 망할 수 없다 외치는 소리

마우스클릭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페이지 열려 수강신청이 되리라


너의 등록금 바쳐서

자존심 죽이고 전진하라

살아도 죽어서도

학점 향해 전진하라

저 절망의 눈물로

모교를 물들이라!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학생의 노래

다시는 수강신청 망할 수 없다 외치는 소리

마우스클릭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페이지 열려 수강신청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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