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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17 ‘을’, 가장 보통의 존재

(생활도서관 2013 '공정무역-대안 혹은 함정' 자료집 서문) 


대형 뉴스들이 연일 쉬지도 않고 터져대는 통에, 평범한 잉여 1’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고’, ‘포스코 왕상무 라면 사건에서부터 편의점주 자살 사건’, ‘남양유업 욕설우유 사건을 지나,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죄다 이라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람 셋이 있으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권력관계.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권력이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떤 행위를 하게끔 강제하는 힘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해서한다면, 그것은 권력이 작용한 결과다. 당신이 밤을 새워 알바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쓸 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밤을 새워 과제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일상 속의 사소한 부분에까지 드러나고, 사람들을 옭아맨다. 그리고 이 권력은 그대로 점점 아래로 아래로 뻗어나가, ‘’, ‘을 거쳐 ’, ‘에까지 이르게 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열 단계 짜리 계층구조의 완성. 이 계층구조의 특징은, 중간에 끼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마가 될 것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시절에, 유럽 열강들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어두었다. 유럽의 식민지였던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커피들은 그대로 식민 종주국으로 옮겨가 유럽인들의 기호음료가 되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 종주국들은 식민지를 더 이상 경영할 수 없게 되었고, 식민지들은 독립했다. 하지만 커피나 바나나, 카카오 등, 식민 종주국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들만 생산하도록 만들어진 산업구조를 가졌을 뿐인 식민지 국가들은, 당장 커피, 바나나, 카카오를 키워 국제 무역 시장에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이것이 식민 종주국들의 ‘100년 동안의 진심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것은, 커피나무 몇 그루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농민들이다. 막 수확한 커피 체리를 거래하는, ‘코요테라 불리는 소규모 중간 거래자는 먹고 살기 위해 농민을 쥐어짜고, 조금 규모가 있는 커피 가공업체는 코요테들을 쥐어짜고, 크라프트, 네슬레와 같은 거대기업은 이들 가공업체들을 쥐어짠다. 다같이 악마가 되어가고 있다.

 

아름다운것과 의외의 사실

 

국제 사회는, 농민에게 농산물의 제값을 지불하는 공정무역이 대안이라고 외쳤다. 네슬레, 크라프트와 같은 거대기업이 끼어드는 중간 유통구조를 생략해, 4천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 중에서 고작 20원 꼴에 불과한 농민 몫을 크게 높이자는 것이 그 운동의 일환이었고, 이렇게 중간 과정을 생략한 커피들을 우리는 시중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시청 건물 한 쪽에 마련된 시민청이라는 공간에는 공정무역을 거쳐 온 커피, 캐슈넛, 초콜릿들을 판매하는 공간이 있고, ‘무한도전에 나와 화제가 됐던 공정무역 커피숍 ‘Think Coffee’와 같은 곳도 있으며, 한국외대 생활도서관은 그동안 매 축제 때마다 공정무역 제품들과 유기농 국산 차들을 판매하는 생태찻집행사를 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아름다운그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 정말 공정사회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철학자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공정무역과 같은 것들은 단지 소비자들로 하여금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본질적인 면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우리가 착해지기 위해’, ‘아름다워지기 위해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만으로 나는 악마에 협조하지 않는다!”라는 알리바이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국제적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관계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무래도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작은 마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밟거나 쥐어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구조 속에서, 우리는 이나 은 고사하고, ‘이나 정도만 되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외대 생활도서관의 공정무역 - 대안 혹은 함정이라는 기획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커피 무역의 문제점을 파악해보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공정무역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공정무역이 정말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혹시 함정카드는 아닌 건지 파악해 어떤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며, 이 구조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공정한방향으로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작은 마음으로.

그러니까, ‘나는무엇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세치 Trackback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