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서평

(2012.06.22 작성)


공교롭게도, 이 제목을 가진 언니네이발관의 노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악마를 대적하는 게임을 만나게 됐다. 서사구조는 간단했다. 게임 플레이어는 그저 캐릭터를 열심히 움직여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 어느새 레벨이 올라있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가 몇 가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것은, 최장집이 지적하고 있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 정치의 문제점들과 묘하게 통한다.


‘악마를 대적한 자는 악마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게임의 이야기를 가장 잘 설명한 문장이리라. 악마를 대적한 자가 왜 악마가 되는가? 그것은 승자독식, 다시 말해 동심원적 중앙집권화가 만들어낸 거대한 중앙권력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으리라. 악마를 대적한 자 스스로는 그 권력을 자신이 제대로 제어할 수 있으며, 이 권력을 이용해서 무언가 이상적인 일을 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겠지만,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장집의 모든 문제의식은, 결국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보면,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왕조국가적 봉건성을 겨누고 있다. 왕조국가에서는 정당정치가 존재할 이유가 없었고,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필요도 없었으며, 공론장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조선에서 붕당정치가 이루어지면서 공론과 논쟁 및 협의의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국사책에서는 애써 긍정해보고 있지만, 실상 조선의 붕당정치가 무엇을 의미했는가? 그것은 어떤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단지 사회 기득권층끼리의 파벌다툼이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양당구도처럼.


하버마스 이래, 공론장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존재했고, 그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론장이 존재함으로써 숙의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과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왕조국가적 봉건성이 엄존하는 상태에서는, 이미 만들어져있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가 폭압으로 눌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 내면에 그런 어색함과 두려움과 한계선이 내재되어 있다. 제도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만들었겠거니, 할 따름이다. 4월과 6월의 혁명, 그리고 개헌, 이 과정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들어갈 최상위법에 대해 얼마나 논의가 됐는가? 여기에 ‘민주주의’의 ‘진짜 민’의 뜻은 얼마나 반영되었는가? 협의와 소통에 의한 정치, 아니 그냥 정치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었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도에 대한 비판이나 진지한 논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 자리에 올라가서 바꿔라”라거나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가 통용된다.


공론장은 채 열리지도 못했고, 따라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는 경험은 해보지도 못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성 원리’ 같은 것은 애저녁에 차단되었다. 노무현이 “공산주의도 포용할 수 있어야 진짜 민주주의”라고 말했다가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떤 진지한 논쟁이나 개인적 선호의 표출 없이 ‘짜장면으로 통일하는’ 문화, ‘알아서 기는’ 문화 속에, 민주주의는 ‘위임 민주주의’로 전환됐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권력을 쥐는가?’에 몰린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 속에서 또다른 아이단이 영혼석을 이마에 박아 넣을 궁리를 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정치’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복수성’은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관계망이 아니라, 상명하복적이고 권위적이며 가부장적인, 성리학적 명분에 따른 관계망일 따름이다.


최장집은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역시 제도 개혁 중심의 대책을 제시했다. 물론 제도가 선도하고 의식이 따라가는 식의 개혁도 있을 수 있지만, 의식이 먼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도 개혁이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를테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할 경우, 오히려 다선의원들의 ‘생존률’이 매우 높아지고 정치 신인들의 참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 속에서 기능하는 정치의 구조다.


그렇다면 의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가? 언론학자이자 운동가인 원용진은 ‘틈새 찾기’에 주목한다. 사회 속에서 억압되는, 혹은 배제되는 소수자들의 운동이 여기저기에서 솟구친다면, 결국 이를 외면할 수는 없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이런 방식 만으로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최장집이 “그 동력을 제도 정치권에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던 학생운동 또한 이러한 ‘틈새 찾기’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틈새 찾기’는, 그간 ‘운동’조차도 기존의 권력 피라미드를 답습하던 것에서 완전히 탈피한, 소수자들의 당사자운동과 그 운동들 사이의 연대, 즉 ‘복수성 찾기’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제도만 바꿔내려’ 했던 기존의 운동과는 아무래도 다르다.


디아블로를 쓰러뜨리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줄 인물은 어느 특출난 영웅 한두 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임을, 우리 스스로가 자각할 계기가 필요하다. 아니, 디아블로는 없다.목표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민주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라는 게임에 모든 이가 빠짐없이 참여하게 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니, ‘서버접속에러37’ 걱정 말고 본격적으로 ‘정치’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 민주화된 사회를 물려줘야 할, 우리의 의무다. 대천사 티리엘의 말을 인용해보자. “누가 나를 지배하는가? 내가 바로 정치다! 우리에겐 더 큰 숙명이 있다. 소외된 가치들을 지키는 것이지. 그러나 그 잘난 정치권력이 우리 모두를 얽맨다면, 이제 ‘피지배자’로 남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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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작성)


‘저항’을 무슨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저항하는 이’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집단이었고, 나는 그것을 외면하기에 바빴다. 내게 그들은 도시의 평화를 해치는 자들이었고, 무서운 이들이었다. 그러나 곧 내 혀와 뇌가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됐을 때,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들어 도시를 바라볼 때, ‘저항’은 누구에게나 절박한 것이었고, 바로 ‘우리’의 싸움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뉴타운간첩파티’,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동국대 본관 점거농성’, 그리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집회 현장 등을 뛰어 다니며 ‘말할 자유’를 외치는 현장을 담았다. 내가 담은 것은 객체화된 ‘타자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 ‘우리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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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라" 12월 9일, 동국대 본관 앞. 동국대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5일부터 본관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그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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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쇄" 12월 3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광화문 광장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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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12월 10일, 보신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다. 국가보안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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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함께" 12월 5일, 동국대 본관 총장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에 반발해 총장실을 점거했다. 한 학생이 ‘끝까지 함께 가자’라는 문구를 벽에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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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 12월 3일, 국가보안법에 항의하는 ‘뉴타운 간첩파티’에 전시된 전시물을 지나가던 이가 보고 있다. 전시물 속 빨간 옷 입은 이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박정근으로, 160여 명에 달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이 그의 사진을 프로필로 내걸고 “나도 박정근이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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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종 데트르" 12월 3일 ‘뉴타운 간첩파티’ 전시물 뒤로 경찰 대오가 지나간다. 내 혀와 뇌의 ‘레종 데트르’는 무엇일까? 나는 정말 ‘나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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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성" 12월 10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유치환, '깃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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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 2011년 12월 초, 서울의 기록  (0)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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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작성)

작년 9월, 박정근이라는 이름의 한 사진가(라고 쓰고 ‘트위터 명망가’라고 읽는다. 아니, ‘망명가’인가?)는 갑자기 트위터에 지금 자신이 운영하는 사진관과 집에 경찰들이 몰려와 압수수색을 하고 있으며, 자신은 피씨방으로 피신해 몰래 이 글을 쓰고 있다, 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당시 그를 팔로우하고 있지 않던 나는 한참 뒤에, 리트윗된 것들을 보다가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뭐가 뭔지,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지켜보며, 이곳저곳의 정보를 취합해보며 겨우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죄목은, 어처구니 없게도,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아아, 국가보안법이라니, 내가 느낀 감정은, 뭔가 7080 스타일 복고풍 배바지 패션을 강의실에서 본 것과 비슷하달까, 한 기분이었다. 아, 세상에! 그러나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이 사진관과 집을 탈탈 털어 압수한 물품들 중에는 ‘오답 승리의 희망’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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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수물품 목록. 오답승리의희망 제10호가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전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전부터 국가보안법의 폐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연히,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진 상태이겠거니, 생각했다. 물론 요즘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은 있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던 ‘무슨무슨 간첩단’ 사건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같은 일들은, 국가보안법이 아직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 소식들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바보처럼, 그런 사건들은 뭔가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거 아닌가, 하고만 생각했고, 나 같이 별 거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시민들과는 별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보안법은 1907년에 통감부가 조선인들의 자강운동이나 독립운동을 봉쇄할 목적으로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해 제정하게 한 ‘조선통감부 보안법’이 그 시초다. 언론의 자유를 송두리째 박탈한 ‘신문지법’과 함께 조선인들을 억압한 대표적인 법이었는데, 대한 자강회와 같은 수많은 조선인 단체들이 이 법의 철퇴를 맞고 해체됐다. 3·1 운동도 보안법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았는데, 유관순 열사의 죽음 역시 이와 관련되어 있다. 1925년에 제정된 치안유지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었다. 일본에서 처음 제정되어 조선에도 적용된 이 법은,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의 상황에 찬동하지 않는 모든 이를 ‘반체제주의자’로 몰아 형무소에 가두거나 사형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치안유지법은 해방 직후에 폐지됐지만, 한국에서는 곧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것은 당시에는 농민, 서민층에서 널리 유행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사상을 탄압하는 데 쓰였고, 군부 집권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거대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고 당 내에서 여러 가지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으나,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 오히려 참여정부 기간에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아마 별로 폐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국가보안법 제1조 1항)라는 미명 하에, 정권에 조금만 거슬려도 잡아넣을 수 있으니,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리한가!


박정근은 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압수수색을 받았던 걸까? 경찰 측에서는 “북한 관련 트위터를 리트윗하는 등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점 등 국가보안법 위반에 혐의를 두고 압수수색했다”(한겨레, 2011년 9월 23일 보도)라고 밝혔는데, 박정근이 한 것이라곤 북한의 대외 선전용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가 올리는 별 쓸데없는 내용들을 리트윗하고, “장군님 만세!”와 같은 트윗을 몇 번 했던 게 전부였다. 누가 봐도 그것은 농담이거나 조롱이었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로, ‘누가 봐도’ 그랬다. 그랬기에 그가 압수수색을 받고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그 상황에서도, 사실 그게 실제로 구속이나 실형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그저 거기서 끝나겠거니,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박정근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압수수색 이후로 그는 몇 번의 경찰 조사를 받았고, 여전히 북한과 관련된 농담을 했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조롱하고 폐지를 요구하는 행사 ‘뉴타운 간첩파티’를 열었다. 12월 3일에 백여 명의 간첩(?)들이 모여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김정일 만세”, “장군님 만세”를 외쳤다. 물론 그 김정일은 어느 기업인 ‘김정일’씨, 장군님은 ‘이순신 장군님’이었다.


“나도 박정근이다!”를 외치며 박정근의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시 자신의 원래 사진으로 돌아갔고, 박정근은 트위터로 여전히 신나게 떠들었고, 연말을 장식했던 서울 학생인권조례 문제, 동국대 구조조정 문제 등이 새롭게 타임라인을 덮었고, 박정근에 대한 추가 조사도 없었고,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일은 이렇게 슬금슬금 묻히는 듯했다. 아니었다. 2012년 1월 10일, 난데없이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니 법원에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구속영장에 적힌 ‘범죄사실의 요지’ 부분이 또 그렇게 멋들어진 명문이었다.


피의자는 2010. 3. 21. 트위터에 'seouldecadence' 라는 아이디로 계정을 개설하여 북한 조평통에서 체제 선전,선동을 위하여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등에 접속 이적표현물 384건을 취득,반포하고,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 팔로워들에게 반포하였으며, 학습을 위하여 이적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함.


여기서 말하는 ‘이적표현물’이라 함은 트윗을 말하는 것이고, 작성, 반포했다는 글 200여 건은 그가 작성한 트윗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이라는 책이 얼마나 대단한 책인가 하고 구글에서 검색해봤더니, 딱 하고 바로 나온다. 사회 과학 출판사에서 발행했고, 1985년에 발간됐으며, 총 259페이지로 되어 있단다. ‘자주 나오는 단어 및 구문’도 정리돼 있고, 심지어 관련도서들은 물론 키워드를 넣으면 본문 어디에 쓰였는지 검색도 해준다! 좀 더 검색해보니 헌책방에서도 거래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대학 도서관에도 있는 책이란다! 하기야, 오승희도 이적표현물로 의심 받아 압수됐던 물품 중 하나였으니, 이적표현물이라는 표현이 뭐 그리 대단해보이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와중에도, 솔직히,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박정근은 다시 별 일 없이 트위터를 계속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박정근 본인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7시 무렵,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그는 그 길로 곧장 구속됐다.


그는 평소에 북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트위터에서도 북한과 관련된 농담과 함께 북한 체제를 조롱하거나 비판하는 트윗을 자주 올렸다. 도대체 아무리 봐도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이라고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이건 무슨 의도로 쓴 거냐”라고 묻는 경찰에게 “농담이었다”, “장난이었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평양 현지의 맛을 궁금해하는 트윗이 대체 어떻게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단 말인가? 그 정도로 위태로울 국가 안전이라면 우리 나라는 진작에 골백번도 더 망했어야 맞는 것 아닌가?


물론 정말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 이를테면 국가기밀을 수집해 팔아넘긴다거나 하는 행위를 한 경우라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처벌받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단순히 몇 마디 말을 했다고 해서 처벌한다는 것이,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나라에서 온당한 일인가? 고작 몇 마디의 말이 국가의 존립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는가? 당장 국가보안법 제1조 2항만 봐도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조항, 지켜지고 있나?


어떤 이들은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잘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라며, 국가보안법은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모든 인권 침해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바로 알고 대응하는 데에 지장을 주어 국가안보에 방해가 된다”라는 주장도 있다. 국가정보원이라는 조직이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를 통해서야 겨우 알았다는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이 수호한다는 안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또한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다. 이를테면, “모든 여성들은 치마를 입어야만 한다”라는 법이 제정됐다고 치자. 원래 치마를 즐겨 입던 사람들이라면 별 피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악법이 아닌 것이 되나? 치마와 바지를 골라 입을 자유는 어디로 간 것인가?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당장 트위터만 해도, 이제는 정말 별 거 안 해도 구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트위터러들을 옥죄어 자기검열을 강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자는 2007년 대선 직전에 인터넷에 제목은 “ㅇㅁㅂ = 단세포”, 내용은 “아메바는 단세포 생물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후, 선거 때 까지는 인터넷에 어떤 글도 쓰지 않겠노라, 라고 마음먹었다. 아메바의 2차 습격이 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훼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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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3일, 대한문 앞. '뉴타운 간첩파티'에서.


얼마 전에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십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뒤이어 국가가 그들에게 1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국가안보 수호’라는 명분 아래, 개인들의 삶을 파괴한다. 박정근 역시 압수수색 이후 불면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스트레스성 장애를 호소했고, 자신의 사진관과 방에 가는 것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구속되어 있는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삶을 이렇게 파괴하는 법이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 일찍이 김수영 시인은 “김일성만세”라는 시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치 않는, 우리 나라가 채택하고 있다는 ‘자유민주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했다. 김수영의 그 시를 인용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시 한 번 외쳐본다. 그리고 오승희, 이적표현물 아니에요. 좀 불순하긴 해도…….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김수영, 1960.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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