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60sec | F/2.8 | 0.00 EV | 50.0mm | ISO-3200 | Off Compulsory | 2014:12:04 21:28:27

△ 2014년 12월 4일,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눈.


2008년, 촛불 정국이었다. slr클럽에는 '시민기자단' 갤러리가 생겼고, 카메라와 캠코더와 인터넷과 아프리카가 공권력에 대한 역판옵티콘 역할을 하던 시국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사진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산 지 반 년이 좀 넘은 똑딱이 카메라가 놀고 있었고, 나는 그걸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과외비를 털어 똑딱이 카메라를 사서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사실, 이것 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긴 했었다. 돈만 충분했으면 입문부터 고성능 dslr로 했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떤 재화를 구매할 때의 제1 판단기준은 가격이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모든 선택에는 저마다의 기회비용이 있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카다미아가 봉지째 나왔냐 그릇에 담겨 나왔냐 가지고 시비를 털 정도는 돼야 별 걱정 없이 턱턱 지를 수 있을 것 아닌가.

건방지게도, '사진을 좀 찍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다가 이불 걷어찰 일이다. slr클럽 같은 곳을 즐겨찾기 찍어놓고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카메라와 사진의 기술적 영역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며, 아 이렇게 조작하면 사진을 이렇게 찍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대단히 큰 오산에 빠졌다. 경기도 오산시청에서 항의전화 받을 일이다. 되도 않는 장비병에나 걸렸지만 물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뭐 대단한 기변의 역사는 없었다. 미놀타 다이낙스5d가 사망함에 따라 같은 마운트를 쓰는, 별로 비싸지 않아 과외비로 살 수 있던 a700을 중고로 들인 정도 말고는.

그래도 조리개가 뭔지, 셔터속도가 뭔지, 감도가 뭔지, 크롭바디가 어떻고 풀프레임이 어떻고 렌즈의 스펙은 어떻게 보는 거고 하는 정도의 지식은 있으니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곤 했다. 기자도 사회부 아스팔트 출입이 제일 처음이듯이, 아무것도 모르던 아마추어, 초보 사진가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공개적인 사건들을 위주로 컷수를 늘려갔다. 물론 야외에서 진행되는 일들의 특성상 물과 먼지를 견딜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50sec | F/4.0 | 0.00 EV | 70.0mm | ISO-3200 | Off Compulsory | 2011:11:23 21:29:54

△ 2011년 11월 23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 한-미 FTA 비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with 24-85)


이런 사진들을 찍으면서는 솔직히 좀 쫄았다. 바디는 방진방습이 허술하게나마 지원되는 것이었지만, 렌즈는 '허술하게나마'도 안 되는 구형 렌즈였으니까. 그래도 내가 뛰어다니며 그나마 보도사진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이런 상황들 정도밖에는 없었고, 그저 렌즈에 물 안 튀게 조심하는 수밖에 별 도리는 없었다. 당시엔 소니 알파마운트로 나오는 렌즈 중 방진방습이 지원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있었다고 해도 그걸 내 지갑 사정으로는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2011년에는 (나오라는 a700 후속 slr은 안 나오고) slt인 a77이 나왔고, a77와 한 쌍으로 16-50이 나왔다. 알파마운트 크롭 렌즈 중 최초의 f/2.8 고정 표준줌이었다. ssm도 달렸고, 크기나 무게도 적당한 것이 그냥 스펙만 봐도 짱짱맨이었다. 무엇보다도, 방진방습을 지원하는 렌즈였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40sec | F/4.0 | +0.70 EV | 40.0mm | ISO-800 | Off Compulsory | 2013:03:15 13:47:19

△ 이렇게 생겼다. 생긴 것 자체는 상당히 단순하다. 화려한 장식 같은 건 전혀 없다. 거리계창이나 양각으로 박힌 렌즈 이름 정도가 '나 고급이요' 하고 말하는 정도다. 꽃 모양 후드가 기본으로 지원되며, SSM 내장 렌즈이기에 af/mf 전환 스위치가 달려 있다. 또 mf로 모드를 변경하지 않아도 초점링을 돌려 초점을 미세하게 맞추는 것이 가능하다.


한참 뒤에 slr클럽에서 댓글 이벤트를 했고, 그냥 무심코 이 렌즈에 대한 이런 기대감들을 적었고, 대체 무슨 조화였는지 덜컥 당첨돼 버렸다. 이걸 받아들고는 그냥 신이 나서 아무거나 더 찍어댔던 것 같다. 사진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했던 것 같다. 무슨 되도 않는 자신감으로 한 시사주간지 사진기자 원서를 냈다가 서류 광탈하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30sec | F/2.8 | 0.00 EV | 22.0mm | ISO-800 | Off Compulsory | 2013:03:29 14:54:49

△ 2013년 3월 29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폐지 반대 목소리.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80sec | F/2.8 | 0.00 EV | 16.0mm | ISO-160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13:04:05 21:13:57

△ 2013년 4월 5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 중구청이 농성장을 철거하고 화단을 조성하자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열렸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640sec | F/7.1 | +1.00 EV | 50.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3:04:09 17:39:15

△ 2013년 4월 9일, 서울 북아현동 뉴타운 개발 현장에서 인부가 펜스 작업을 하고 있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125sec | F/7.1 | +0.70 EV | 35.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3:04:09 18:01:32

△ 2013년 4월 9일, 서울 북아현동 뉴타운 개발 현장. 건물을 철거하던 중장비가 멈춰있다.


선물 받은 렌즈의 효과는 뛰어났다. '이 좋은 렌즈를 썩힐 수는 없다'는 어떤 의무감도 들었고, 어떤 자신감 같은 것도 생겼다. 이거라면 못 찍을 사진은 없어! 라는 식의. 아닌 게 아니라, '못 찍을 사진'이 매우 적어졌다. 일단 기존에 쓰던 24-85는, 화질적으로는 준수했지만, 상당히 허술한 만듦새(경통을 망원단으로 뽑아놓고 잡고 흔들면 흔들린다. 그것도 꽤 크게.)와 함께 af 문제가 좀 있었다. 특히 망원단에서 핀이 나가는 문제가 심각했는데, 한 번 센터에 가서 초점 교정을 받아봐야 하나 싶었지만 미놀타 렌즈를 소니 센터에서 봐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냥 참고 썼다. a700에 자가 초점 교정 기능이 있었더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3.5-4.5의 가변조리개는 어떤 상황에서는 제약이 될 수밖에 없었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5sec | F/4.5 | 0.00 EV | 26.0mm | ISO-3200 | Off Compulsory | 2011:12:03 19:06:20

△ 2011년 12월 3일, 서울 대한문 앞 '뉴타운 간첩파티'.(with 24-85)


iso를 3200까지 올리고도 셔터속도를 더 뽑아낼 수 없는 어두운 상황. 사실 저날 공연을 촬영한 사진들도 있지만, 아예 내놓기가 힘들 정도다. 다행히도 16-50의 f/2.8 고정조리개로 이런 상황에서 한 스탑 정도는 여유를 얻을 수 있게 됐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8sec | F/2.8 | 0.00 EV | 16.0mm | ISO-6400 | Off Compulsory | 2013:06:28 00:36:25

△ 2013년 6월 28일, 경희대. 메타정보에도 나와있지만 정말 극한의 상황이었다. f/2.8 조리개와 손떨림보정으로 겨우 버틴 경우.


그리고 또 하나, 24-85는 아무래도 필름용 렌즈라서 광각단이 아쉬울 때가 많았지만, 16-50은 그 문제가 많이 해소됐다. 당장 기자회견 같은 경우, 넓지 않은 장소에서 많은 인원이 펼침막을 들고 가로로 서있는 경우가 많은데, 크롭바디에서 24mm면 환산 36mm에 해당하는 화각이니 좌우 사람이 잘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16-50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환산 24mm 상당 화각 정도면 대부분의 경우는 다 커버가 된다. 어설프게나마 넓은 느낌도 흉내내볼 수 있고. 그걸로 안 되는 경우는 얄짤 없이 초광각렌즈를 써야 하겠지만.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80sec | F/8.0 | +1.00 EV | 16.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3:04:20 17:16:31

△ 2013년 4월 20일, 서울 종로 인근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관련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400sec | F/9.0 | +0.70 EV | 16.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3:08:06 16:02:42

△ 2013년 8월 6일, 푸른하늘공동행동.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00sec | F/11.0 | 0.00 EV | 16.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3:08:03 15:20:01

△ 2013년 8월 3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640sec | F/9.0 | 0.00 EV | 16.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4:03:22 14:03:43

△ 2014년 3월 22일, 부산타워.


그리고 f/2.8 조리개를 이용한 배경 정리도 가능했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80sec | F/2.8 | +0.30 EV | 50.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13:08:03 19:38:42

△ 2013년 8월 3일, 청계천에서 이석채 당시 KT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5000sec | F/2.8 | 0.00 EV | 35.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4:03:22 11:53:10

△ 2014년 3월 22일, 부산 자갈치시장.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1000sec | F/2.8 | 0.00 EV | 40.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4:05:04 14:24:25

△ 2014년 5월 4일.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500sec | F/2.8 | +0.70 EV | 50.0mm | ISO-800 | Off Compulsory | 2014:07:03 13:56:46

△ 2014년 7월 3일.


신문사에 취직했다. 사진기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의 트렌드는 '멀티형 기자'라나 뭐라나. 사진기자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거나 혹은 사진기자를 부를 만한 큰 건이 아닌 경우,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내가 커버하곤 했다. 전문 사진기자도 아닌데 이것저것 장비를 바리바리 챙길 수 없으니, 내가 갖고 있는 a700에 고성능 표준줌렌즈 하나, 그리고 플래시 정도 챙겨서 '음, 뭐 이 정도면 뭐라도 해볼 수 있겠군' 하고 돌아다니곤 했다. 사실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던 입장에서, 은근히 그런 상황을 즐긴 것도 있다. 그리고 기사를 내가 쓴다면, 그 기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진은 기사를 쓰는 내가 찍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생각도 좀 있었고.

카메라 바디에는 성능적인 문제가 좀 있었다. 오래된 바디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초당 5연사면 못 쓸 정도는 아닌데, 연사 버퍼가 너무 작아서 좀 찍다가 먹통되고, 다시 좀 찍다가 먹통되고,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버퍼 용량만큼만 연사를 끊어 누르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합의(?)를 봤다. af는 중앙 1점은 매우 신속하고 정확했지만, 나머지 측거점은 그냥 있으나마나한 수준이라, 아예 중앙 1점 고정으로 썼다. 중앙 1점은 원래 듀얼크로스로 설계됐던 데다가, f/2.8 이상에서 활성화되는 라인센서가 하나 더 있어서 16-50과의 궁합이 좋은 편이었다. 또 허술하긴 해도 방진방습을 지원하기 때문에, 역시 방진방습을 지원하는 16-50과 함께라면 비가 좀 오는 날에도 개의치 않고 카메라를 꺼내들 수 있었다.

다만 플래시에 문제가 좀 있었는데, 플래시 자체보다는 핫슈 단자의 내구성이 문제였다. 이게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서 잘못하면 깨지는데, 내 경우에도 한 번 깨먹어서 수리를 보내야만 했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000sec | F/5.6 | +0.30 EV | 17.0mm | ISO-800 | Off Compulsory | 2013:11:06 10:54:49

△ 2013년 11월 6일, 완주군청 앞, 쌀 목표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야적 시위.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3200sec | F/2.8 | -0.30 EV | 45.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3:11:12 11:28:14

△ 2013년 11월 12일, 전북경찰청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는 기자회견 및 삭발식이 열렸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1250sec | F/2.8 | 0.00 EV | 18.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13:12:09 14:12:50

△ 2013년 12월 9일, 수서발 KTX 분리 및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총파업.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50sec | F/4.5 | +0.70 EV | 28.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3:12:16 11:53:14

△ 2013년 12월 16일,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있는 대학생들.


사진이 죄다 2013년에 찍은 것만 있지만 2014년에도 꾸준히 찍고 있다. 다만 일일이 다 늘어놓기가 귀찮을 뿐(...) 또 지면에 들어간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골라내는 것도 의외로 일이다. 지면에 들어간 건 저작권이 내게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올려놓을 수도 없으니.

아무튼, 이 같은 장점들이 있지만, 16-50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16mm에서는 술통형 왜곡이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인데, a77 등 신형 바디에서는 이를 잡아주는 보정 기능이 있어 크게 문제가 안 될 수 있어도, 그런 기능이 없는 a700에서 쓰기엔 심히 곤란하다는 것. 그 왜곡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냐면,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200sec | F/10.0 | +0.70 EV | 16.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3:05:15 12:00:10

△ 2013년 5월 15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축제 중.


분명 건물이고 바닥이고 다 직선인데,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양으로 찍혔다. 이게 또 불룩한 것이 균등하면 모르겠는데, 유독 가운데만 불룩하게 나오니 직접 보정하기도 좀 애매하고 그런 것이다. 지금은 별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저것도 저것 나름대로 스트레스 요소였다. 그래서 한때는 16mm는 피해서 한 20mm쯤부터 쓰려고 노력해보기도 하고 그랬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생물인 모양이다.

한편 16-50에 고질적인 초점 문제가 있어서 한 번 교정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실제로 약간의 초점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있었다. 필연적으로 심도가 얕아지는 망원단에서 잘 드러났는데, 초점이 약간 흐리멍덩하게 맞는 경향이 있었다. 핫슈를 한 번 부러뜨리고서 렌즈랑 한 세트로 수리를 보냈더니, 초점이 약간 앞에 맺히는 경향이 있다면서 교정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무료 as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뒤에는 망원단에서도 이미지가 깔끔하게 잘 나온다. 내 경우에는 그냥 교정의 문제였던 것 같다.


SONY | DSLR-A700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4000sec | F/2.8 | +0.70 EV | 50.0mm | ISO-200 | Off Compulsory | 2014:03:20 13:24:16

△ 2014년 3월 20일, 부산.


2007년에 나와 2011년에 구입한 바디와 2011년에 나와 2013년에 선물받은 렌즈의 사용기를 2014년 말에 쓰고 있으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 늦었다. 사용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하루이틀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보니 벌써 이렇게 됐다.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 타이레놀과 카페인 없이는 글을 못 쓸 정도로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사진을 찍을 때, 파일을 컴퓨터로 옮겨와 보정할 때, '그래도 쓸만한 사진'을 몇 장 골라낼 때에는 즐겁다, 까지는 아니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물론 여전히 '사진을 찍는' 수준은 아니고, '카메라를 다루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언제까지 이 카메라와 이 렌즈로 사진을 찍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뎌줘서, 그래도 남에게 보여줄 만한 사진 몇 장을 뽑아줘서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겠지.


@milpis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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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죽어댄다. 뭘 좀 해볼라치면 난데없이 '돌연사' 메시지가 뜬다. 허무하다. 마음을 다잡고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을 누른다.

일본에서 만들어져 '개복치 유리멘탈설' 같은 도시전설의 진원지가 됐던 '살아남아라! 개복치'의 한국어 버전이 나온 지는 얼마 안 됐다. 인벤의 리뷰에 따르면 지난 10월 25일 출시됐다고 하는데, 11월 5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래도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 등록과 iOS 아이튠즈 등록의 차이인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게임이 SNS상에서 화제가 된 것은 확실히 11월 5일 이후의 일이다.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더 뭐라고 말을 붙일 필요도 없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를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후기를 남겼고, 게임 전문 매체의 리뷰도 나와있는 마당에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사실 이 게임 자체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정도로 복잡하다거나 한 게임도 아니다. 목표는 10톤짜리 개복치가 되는 것, 그래서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하는 것. 플레이어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가끔 생각 날 때마다 화면의 해산물(...)을 눌러 개복치에게 먹이고, '모험'을 눌러 확률에 목숨을 걸어보고, 그렇게 개복치의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리고 걸핏하면 뜨는 돌연사 메시지에 좌절하는 것 말고는 없다. 진짜로 그게 전부다.



△3톤이 넘는 거구가 게 다리 하나를 못 씹어서 말이다.

 

이 게임의 설정에 따르면, 플레이어가 키우는 개복치는 이미 3억 개의 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부화해서 성장하게 됐음에도, 주변 환경의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 먹이를 먹다가도 죽고,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궈내기 위해 점프했다가도 착수를 잘못해 죽고, 바다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해변으로 밀려나 죽고, 거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죽고, 사진 촬영을 할 때 터지는 플래시에 스트레스 받아 죽는다. 기실, 게임을 맨 처음 시작했을 때 나오는 기본 먹이인 물벼룩을 먹을 때 말고는, 게임 안에서 무슨 행동을 하든지 반드시 죽을 확률이 붙어있다. 비록 한 번 죽고 나면 내성이 생긴다 해도, 그 한 번의 죽음은 죽음이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은 확률게임이다. 개복치에게는 같은 사인으로 한두 번 죽기 전까지는 '안전지대'라는 건 없다. 등교하다 다리가 무너져 죽고,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갔다가 죽고, 지하철 탔다가 죽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강당이 무너져 죽고, 여행가다 배가 가라앉아 죽고, 공연 보러 갔다가 환풍구가 무너져 죽는다. 노후한 원자력발전소가 터질 확률은 얼마인가? 이 건물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음식에는 위험한 요소가 없을까? 이 배는, 이 버스는, 이 철도 차량은 안전한가?

꼭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지라도, 세상 속에서 내 목을 노리는 수많은 위험요소들을 적절하게 확률놀이로 피해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내가 사는 곳이 송전탑 건설을 위해 강제수용될 확률은 얼마일까? 내가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정리해고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 당장은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국은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죽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개복치 게임에서는 한 가지 사인으로 개복치가 죽으면 해당 사인에 대한 내성이 생김과 동시에 MP(게임상 화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수치. 아마도 Molamola Point의 약자가 아닐까 싶다)와 체중 증가 보너스가 생긴다. '돌연사' 메시지가 뜨고 힘들여 키운 개복치가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플레이어는 그나마 여기서 위안을 얻으며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을 누른다. 물벼룩을 제외한 모든 먹이는 8%씩의 사망 확률이 붙어있지만, 해당 먹이를 먹고 죽으면 사망 확률은 0.1%로 크게 줄어든다. '모험'은 처음에는 사망 확률이 50%에 이르지만, 한 번 죽으면 25%, 또 한 번 죽으면 5% 등으로 줄어든다. '플래시', '거품' 등의 특수한 사인들은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그 원인으로 죽지 않는다. 확률게임이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개복치는 그래도 조금은 더 안전하게 몸집을 불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이 있느냐고. 이 잔인한 확률게임을 단숨에 끝장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죽어가는 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이 있느냐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국가에게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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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하긴 해야겠다.

미디어오늘의 박효도선생 관련 기사,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실망이다. 그것도 어느 '닷컴' 언론사나 무슨무슨 '온라인뉴스팀' 같은 게 아닌, 미디어오늘 씩이나 되는 매체에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실망이다.

'공인이론'에 따르면 '공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직무에 관련이 있는 한 어느 정도까지는 침해가 용인된다. '공인'의 범주는 아주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개 '(5급 이상의)고위 공직자',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의 주요 관련자' 정도로 이야기된다. 다만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까봐야 사회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공직자나 사건 관련자와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 받는다.

박광온은 일단 공인이다. 이제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이며,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그에 관한 많은 많은 정보들이 공개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박광온 본인은 빼박can't 공인이며, 그의 프라이버시는 일정 정도 제한된다. 그의 프라이버시가 제한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수원시 영통구 주민들이 뽑은 '대의'이면서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국회의원의 가족을 '공인'으로 봐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채동욱 혼외자 의혹이 제기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보도를 비난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직무와는 별 관련 없는 '신상털기'일 뿐이라는 점에서였다. 유병언, 유대균과 관련한 종편의 아무 의미 없는 '신상털기' 기사 또한 강한 비판을 불러왔다. 미디어오늘이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박효도씨는 미디어스 인터뷰에서 "본인이 공개를 원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소개를 해주신다면"이라는 질문에 "30대 직장인이고, 인디밴드에 소속된 공연기획자이다"고 답했다. 그가 '공개를 원하는 한도'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SNS를 통해서 신상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심지어 기사 내에도 "박효도씨는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이와 관련한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소한, 박효도씨가 왜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야 했다. 단순히 "왜 그렇게 말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됐다. 물론 그는 '왜 그랬는지'를 공개한 적은 없지만, 그가 SNS에 올린 글의 내용과 앞선 미디어스의 인터뷰 기사("부모의 삶과 나의 삶이 최대한 분리되기를 바라던 내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완전분리가 불가능하기에 내가 의도적으로 분리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로 추정컨대, 그는 '국회의원 가족'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길 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통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름과 나이가 공개됐으니, 공개된 내용을 조합해보면 박효도씨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게 되고, 신상이 특정되면 그는 '국회의원 가족'의 삶으로 묶여버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 나라에서 '국회의원 딸'로 알려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겠는가.(박효도씨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보라서 다행'인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가족이니 어떤 루트를 거치면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의원 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의원실의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고, 그것도 아니라면, 박 의원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면 어딘가에 나오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루트의 정보가 '이미 공개된 정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보인가? 더군다나 박효도씨 본인이 이미 신상 공개를 거부한 마당에, 굳이 그걸 밝혀 보도해야만 하는 어떤 당위라도 있었던 것인가? 혹여 박효도씨가 이름과 나이를 감춰서 비리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가?

미디어오늘과 기자가 악의를 품고 해당 기사를 올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고, 일단은 확인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이니 그 나름대로 의무는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는 제목도, 기사를 올리는 편집기자의 과욕이었다고만 생각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악의 없고 절차적으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도 어떤 경우에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 그것도 매체비평지의 입장에서는.

미디어오늘의 존재가치는 대단하다. 우리 나라 언론 환경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매체비평지이자, 사회 전반에 대해 끝없는 관심을 유지하는 좋은 언론사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일에 더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박효도씨 본인에 대한 사과와 함께 기사 내 신상정보를 삭제하는 정도의 조치는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세치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