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하긴 해야겠다.

미디어오늘의 박효도선생 관련 기사,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실망이다. 그것도 어느 '닷컴' 언론사나 무슨무슨 '온라인뉴스팀' 같은 게 아닌, 미디어오늘 씩이나 되는 매체에서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실망이다.

'공인이론'에 따르면 '공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직무에 관련이 있는 한 어느 정도까지는 침해가 용인된다. '공인'의 범주는 아주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개 '(5급 이상의)고위 공직자',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의 주요 관련자' 정도로 이야기된다. 다만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까봐야 사회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공직자나 사건 관련자와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 받는다.

박광온은 일단 공인이다. 이제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이며,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그에 관한 많은 많은 정보들이 공개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박광온 본인은 빼박can't 공인이며, 그의 프라이버시는 일정 정도 제한된다. 그의 프라이버시가 제한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수원시 영통구 주민들이 뽑은 '대의'이면서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국회의원의 가족을 '공인'으로 봐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채동욱 혼외자 의혹이 제기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보도를 비난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직무와는 별 관련 없는 '신상털기'일 뿐이라는 점에서였다. 유병언, 유대균과 관련한 종편의 아무 의미 없는 '신상털기' 기사 또한 강한 비판을 불러왔다. 미디어오늘이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박효도씨는 미디어스 인터뷰에서 "본인이 공개를 원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소개를 해주신다면"이라는 질문에 "30대 직장인이고, 인디밴드에 소속된 공연기획자이다"고 답했다. 그가 '공개를 원하는 한도'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SNS를 통해서 신상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심지어 기사 내에도 "박효도씨는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이와 관련한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소한, 박효도씨가 왜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야 했다. 단순히 "왜 그렇게 말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됐다. 물론 그는 '왜 그랬는지'를 공개한 적은 없지만, 그가 SNS에 올린 글의 내용과 앞선 미디어스의 인터뷰 기사("부모의 삶과 나의 삶이 최대한 분리되기를 바라던 내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완전분리가 불가능하기에 내가 의도적으로 분리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로 추정컨대, 그는 '국회의원 가족'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길 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통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름과 나이가 공개됐으니, 공개된 내용을 조합해보면 박효도씨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게 되고, 신상이 특정되면 그는 '국회의원 가족'의 삶으로 묶여버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 나라에서 '국회의원 딸'로 알려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겠는가.(박효도씨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보라서 다행'인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가족이니 어떤 루트를 거치면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의원 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의원실의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고, 그것도 아니라면, 박 의원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면 어딘가에 나오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루트의 정보가 '이미 공개된 정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보인가? 더군다나 박효도씨 본인이 이미 신상 공개를 거부한 마당에, 굳이 그걸 밝혀 보도해야만 하는 어떤 당위라도 있었던 것인가? 혹여 박효도씨가 이름과 나이를 감춰서 비리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인가?

미디어오늘과 기자가 악의를 품고 해당 기사를 올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고, 일단은 확인절차를 거친 것으로 보이니 그 나름대로 의무는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소 선정적으로 보이는 제목도, 기사를 올리는 편집기자의 과욕이었다고만 생각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악의 없고 절차적으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도 어떤 경우에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 그것도 매체비평지의 입장에서는.

미디어오늘의 존재가치는 대단하다. 우리 나라 언론 환경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매체비평지이자, 사회 전반에 대해 끝없는 관심을 유지하는 좋은 언론사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일에 더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박효도씨 본인에 대한 사과와 함께 기사 내 신상정보를 삭제하는 정도의 조치는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세치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