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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09 개복치와 우리들의 확률게임


걸핏하면 죽어댄다. 뭘 좀 해볼라치면 난데없이 '돌연사' 메시지가 뜬다. 허무하다. 마음을 다잡고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을 누른다.

일본에서 만들어져 '개복치 유리멘탈설' 같은 도시전설의 진원지가 됐던 '살아남아라! 개복치'의 한국어 버전이 나온 지는 얼마 안 됐다. 인벤의 리뷰에 따르면 지난 10월 25일 출시됐다고 하는데, 11월 5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래도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 등록과 iOS 아이튠즈 등록의 차이인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게임이 SNS상에서 화제가 된 것은 확실히 11월 5일 이후의 일이다.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더 뭐라고 말을 붙일 필요도 없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를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후기를 남겼고, 게임 전문 매체의 리뷰도 나와있는 마당에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사실 이 게임 자체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을 정도로 복잡하다거나 한 게임도 아니다. 목표는 10톤짜리 개복치가 되는 것, 그래서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하는 것. 플레이어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가끔 생각 날 때마다 화면의 해산물(...)을 눌러 개복치에게 먹이고, '모험'을 눌러 확률에 목숨을 걸어보고, 그렇게 개복치의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그리고 걸핏하면 뜨는 돌연사 메시지에 좌절하는 것 말고는 없다. 진짜로 그게 전부다.



△3톤이 넘는 거구가 게 다리 하나를 못 씹어서 말이다.

 

이 게임의 설정에 따르면, 플레이어가 키우는 개복치는 이미 3억 개의 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부화해서 성장하게 됐음에도, 주변 환경의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 먹이를 먹다가도 죽고,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궈내기 위해 점프했다가도 착수를 잘못해 죽고, 바다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해변으로 밀려나 죽고, 거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죽고, 사진 촬영을 할 때 터지는 플래시에 스트레스 받아 죽는다. 기실, 게임을 맨 처음 시작했을 때 나오는 기본 먹이인 물벼룩을 먹을 때 말고는, 게임 안에서 무슨 행동을 하든지 반드시 죽을 확률이 붙어있다. 비록 한 번 죽고 나면 내성이 생긴다 해도, 그 한 번의 죽음은 죽음이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은 확률게임이다. 개복치에게는 같은 사인으로 한두 번 죽기 전까지는 '안전지대'라는 건 없다. 등교하다 다리가 무너져 죽고,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갔다가 죽고, 지하철 탔다가 죽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갔다가 강당이 무너져 죽고, 여행가다 배가 가라앉아 죽고, 공연 보러 갔다가 환풍구가 무너져 죽는다. 노후한 원자력발전소가 터질 확률은 얼마인가? 이 건물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나? 이 음식에는 위험한 요소가 없을까? 이 배는, 이 버스는, 이 철도 차량은 안전한가?

꼭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연결되는 게 아닐지라도, 세상 속에서 내 목을 노리는 수많은 위험요소들을 적절하게 확률놀이로 피해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내가 사는 곳이 송전탑 건설을 위해 강제수용될 확률은 얼마일까? 내가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정리해고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 당장은 죽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국은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죽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개복치 게임에서는 한 가지 사인으로 개복치가 죽으면 해당 사인에 대한 내성이 생김과 동시에 MP(게임상 화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수치. 아마도 Molamola Point의 약자가 아닐까 싶다)와 체중 증가 보너스가 생긴다. '돌연사' 메시지가 뜨고 힘들여 키운 개복치가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플레이어는 그나마 여기서 위안을 얻으며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을 누른다. 물벼룩을 제외한 모든 먹이는 8%씩의 사망 확률이 붙어있지만, 해당 먹이를 먹고 죽으면 사망 확률은 0.1%로 크게 줄어든다. '모험'은 처음에는 사망 확률이 50%에 이르지만, 한 번 죽으면 25%, 또 한 번 죽으면 5% 등으로 줄어든다. '플래시', '거품' 등의 특수한 사인들은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그 원인으로 죽지 않는다. 확률게임이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개복치는 그래도 조금은 더 안전하게 몸집을 불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강력하게 뉴게임' 버튼이 있느냐고. 이 잔인한 확률게임을 단숨에 끝장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죽어가는 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이 있느냐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국가에게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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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치 Trackback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