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2015.09.14 22:12

13일 늦은 시각에 노사정위원회는 '일반해고 도입'을 비롯한 많은 소위 '노동개혁'안에 합의했고, 14일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이를 승인했다. 비록 '중장기과제'로 넘겨져, 당장 연내에 도입되거나 할 성격의 것은 아니나, '일반해고 도입'은 이제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일반해고' 도입은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논의된 것이지만, 사실 이것은 '성과'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성과'가 뭔지, 그걸 어떻게 측정하는지, 그것에 필요한 직무능력은 무엇인지 등등, 한국의 기업들이 저 중에 관심이라도 갖고 있는 게 있었던가. 성과관리보다는 '비용최소화'라든지, 어떤 정치적 목적(이를테면 노조분쇄랄지)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뜯어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일단 '성과'라는 것을 기업이 평가해서 자를 수 있도록 칼자루를 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임금(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은 기업에게는 '줄일 수 있는 비용'의 문제지만 노동자에게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다. 사회적 안전망은 허술하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나온 '부문별 사회복지지출 수준 국제비교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비교대상 30개국에서 당당히 30위를 차지했다. 부문별로도 노령부문이면 노령부문, 근로무능력부문이면 근로무능력부문, 실업부문이면 실업부문 죄다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저성과자'라는 잣대를 가지고 고용 지속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온전히 기업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노동자로서는 생사여탈권을 위임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경험적으로 한국의 기업들이 대체로 실제 성과와는 관계 없이 '싹싹하지 않은' 사람을 우선 자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1순위는 물론 노동조합 혹은 그에 준하는 움직임을 보인 노동자일 것이다. 또는 단지 상사에 밉보인 사람이 찍혀 해고당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이와 함께, 알다시피 한국은 이미 노동자의 지위 자체가 대단히 불안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7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주최로 열린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확보 방안' 토론회에서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에서 노동자 근속기간이 가장 짧은(5.6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육아휴직이나 출산 전후 휴가를 다녀와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여성 노동자가 2만6755명인 나라이며, 쌍용자동차와 KTX 승무원의 전례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쌍용자동차의 경우에는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억지로 꾸며내느라 서류를 조작한 정황이 확인됐음에도 법원에서 해고가 인정된 사례다.

근로기준법 상 해고 요건은 '정당한 이유'(제23조), 그리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제24조)로 돼 있다. 이 '정당한 이유'의 폭은 그간 꾸준히 넓어져왔다. 설령 '부당해고'라 하더라도, 노동자 개인이 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며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정리해고 역시 지금 당장 '긴박'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그럴 것 같다는 추정만으로도 가능하게 된 상태다. 꼭 '해고'가 아니어도 권고사직, 희망퇴직, 또는 지속적인 괴롭힘을 통한 퇴직 유도 등등 많은 방법이 있고, 현재 그렇게 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있다. 그렇다. 이미 해고는 충분히 쉽다.

'합의' 같은 개념이 나오는 건 그래서 당연한 것이겠으나, 노조 조직률 OECD 최하위(10.3%)에 빛나는 한국에서 노사간의 '동등한' 합의라는 게 가능할까? 소위 '강성노조'를 가진 일부 대형 사업장을 제외하면, 그냥 '무조건' 사측의 입맛대로 취업규칙이 변경될 것이다. 취업규칙을 노동자에 불리하게 변경하는 조건을 완화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끌고 온 것일테다.(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을 노동자에 불리한 방향으로 고치는 것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다시 말해 '성과평가'를 빌미로 노동자를 마음껏 해고할 자유가 기업에 주어지면, 노조가 망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빠질 것이다. '성과평가'가 기다리고 있는데 성폭력, 성차별에 항의나 할 수 있겠나? 다른 소수자의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은 '성과를 낼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쫓겨날 것이다. 저항 수준도 못 되는, '업무상 직언' 같은 것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육아휴직은 이제 '사라진 제도'가 될 것이며, 병가 같은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건 '기준'이나 '합의'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해고'라는 요목이 생긴다는 것 자체만으로 벌어질 일들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한 제도라는 게 뭐가 있나? 이번 '노동개혁' 논의에서 나온 것이라곤 고작해야 실업급여 약간 늘린 것(수급기간 30일 연장, 급여는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60%로 10%p 상향)이 전부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든지, 비정규직 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든지 하는, 말장난 같은 정책이나 밀고 있다. 다 놔두고, 해고 난도와 취직 난도를 비교해보자. 어느 것이 쉽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무슨 '유연화'를 논한단 말인가?

물론 해고 난도가 낮아지면서 기업이 일시적으로 채용 규모를 늘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다. 또는 '늘어난' 그 자체가 신기루일 수도 있다. 무슨 '졸업정원제'마냥, 취직 난도는 조금 낮아지는데 몇 년 못 가 대부분이 다시 잘려버리는 경우가 일반화될 수도 있다. 10명이 입사해 1년 뒤 2명만 살아남는다거나 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 어쩌면, 오히려 실직자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신규 채용은 아예 멸종할 수도 있다. 경력직이 넘쳐나는데 왜 신규를 쓰겠는가?

결국은, 그렇다. 소위 '노동개혁'이란 것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일시적이거나 허당일 것이고, '부정적 효과'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노동자 모두에게 다가올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신이 금수저 은수저가 아닌 이상,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로서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다. 따라서 우리 대부분은 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반해고' 도입 이후의 우리 대한민국 노동자에게는 이제 두 가지 길만 남게 될 것이다. 탈출이냐, 죽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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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