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2016.11.20 00:21

집회 현장에 나가다 보면 어쩐지 낯이 익은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원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집회에 나가다 보니 한두 번씩 계속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보통 드는 감정은 '반가움'인데, 가끔 '이런 사람을 이런 데서?!'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면 '반가움'은 몇 배가 된다.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100만 명 넘는 사람이 모였고, 이번 주에도 서울 60만 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전주에 있던 나는 오늘도 '반가운' 얼굴을 여럿 보았고, 관통로 사거리에 쏟아져 나온 1만여 명이 한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모습에 약간 든든함 같은 것도 느꼈다. 이번에는 "혐오발언을 그만두라"와 같은 목소리도 나왔고, 많은 시민이 여기에 동의의 뜻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에도 별로 바뀌는 것은 없을 전망이다. 청와대는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만 노리는 듯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퇴진할 생각이 없으며, 일부 사람들은 JTBC의 취재장비를 박살 냈으며, 시민들은 '얌전'했다. 경찰차벽을 '꽃벽'으로 만들자며 붙인 스티커를 도로 떼는 모습도 나왔다. 여기에 어떤 '답답함' 내지는 '허탈함'을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1960년의 혁명은 3·15 부정선거에서 시작됐다. 이승만이 '하야'하겠다 한 것은 4월 26일이었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경찰서 유리창이 성할 날 없던 격렬한 시위가 무려 한 달 넘게 지속되고서야 마침내 시민들이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1987년의 혁명 또한 5월 말부터 장장 한 달여에 걸친 긴 싸움 끝에 6월 29일에 신군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전개였다.

2016년, 10월 말에 불붙은 싸움은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첫 대규모 집회가 11월 5일에 있었고 11월 12일과 11월 19일에 연이어 100만 명씩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뭔가가 획기적으로 달라지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안남시민연대'나 '범야옹연대' 같은 깃발로 우리 자신을 확장해 가고 있고, 다른 동료시민을 배제하는 '혐오발언'들을 차단해 가고 있다.

한 주 한 주, 이런 '숫자놀음'에 불과한 '평화집회'로 뭘 바꿀 수 있겠냐는 우려도 크다.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원래 느리다. 지극히 느려터졌고 또 지극히 비효율적인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그런 사상을 우리가 신봉하는 이유는 바로 저 많은 동료시민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함이고, (아직까지는)민주주의만이 그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굳이 '비폭력', '평화' 프레임 속에 갇혀있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어떤 '순수함'이나 '고결함' 같은 것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우리는 그냥 시민이다. 그냥 그렇게 있는 존재다. 누가 감히 우리에게 어떤 '특정한 모습' 같은 걸 요구할 수 있나?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을 다만 권력자는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폭력'과 '평화'를 주장하는 저 광장의 시민들을 비웃을 이유 또한 없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돌멩이나 쇠파이프 따위가 아니다. 공권력을 독점하고 있는데 고작 그런 게 무서울 거리나 될 수 있나. 저들에게 진정 두려운 상황은 자신들이 고립되는 것이다. 어딜 가도 자기편이 없는 것. 어느 누구도 자기들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 자기 반대편 사람들은 저렇게 많이 나와서 서로 뜻을 공유하고 반가워하는 것. 그것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 더는 그냥 묻고 넘어가기 어려워지는 것. 그것이다.

우리 동료시민을 더 믿자. 저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을 하자. 한 사람이라도 더 광장에 나오게, 그리하여 '반가움'을 느끼게 하자. 한 번의 시위로 끝나지 않는다면, 친한 사람의 손을 잡고, 혹은 '안남시민연대' 같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무 깃발이나 붙들고 광장으로 다시 가자. 조금만 더 '답답'하게, 때로는 '별로 얻어내는 것도 없'는 듯, 또 때로는 '단지 놀러 나온' 듯, 그럼으로써 더 많은 동료시민과 함께 할 수 있게,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 추가: 경찰차벽의 스티커를 떼는 행동이 비판받을 지점은 '경찰에게 씨알도 안 먹힐 포용 같은 걸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시민의 의사표현을 멋대로 철회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의견의 영역이고 후자는 타인의 (딱히 폭력적이지도 않고 남을 배제하지도 않는)의견 표현을 가로막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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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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